자율형 사립 동성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에 대한 본교의 입장문
114년 전통의 가톨릭 명문사학인 동성고등학교는 “복음에 입각한 전인적 교육활동을 통해 ‘믿음과 사랑으로 봉사하는 인간’을 길러내고자 한다.”는 교육 목표를 내걸고 2009년 7월 14일 자사고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본교가 자사고의 길을 선택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톨릭계 학교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립 고등학교들이 사학의 자율성을 존중받지 못하고 준공립화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나라 학교 교육 현실 속에서, 가톨릭 학교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가톨릭 교육철학과 교육이념에 맞는 좋은 교육을 해 나가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2009년 자사고로 전환됨에 따라 본교는 이러한 준공립화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당당하고 분명하게’ 가톨릭 교육철학과 이념에 따라 가톨릭적인 교육을 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톨릭 자사고로서 동성고등학교는 그동안 꾸준히 두 가지 특색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습니다.
하나는, 가톨릭 교육이념의 실현으로서, 지성과 인성의 통합 교육입니다. 대부분의 자사고와 인문계 고등학교들이 학업 성취와 좋은 대학입시 결과에만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본교는 ‘탁월한 지성과 바른 인성을 갖춘 Humane leader’를 양성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학생들의 학업 성취와 대학입시를 위해 질 높은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들을 제공하면서도 가톨릭 영성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인성 교육을 비중 있게 실시해 왔습니다. 자사고로서의 11년 동안 본교는 ‘공동체적이고 인간적인 따뜻한 교육 환경 속에서, 다양한 학업 수준을 가진 다양한 계층의 학생들이 모두 존중받으며 공부하면서, 바른 인성과 학업 신장의 통합을 이루어 나가는 좋은 명문 고등학교’가 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미래의 사제 양성을 위한 예비신학생반의 운영입니다. 본교는 일제 강점기 후반(1929-1945)에 특별학급(을조)을 편성하여 김수환 추기경, 지학순 주교 등 천주교를 이끌어 나갈 훌륭한 사제들을 양성했었습니다. 그 명맥이 소신학교를 통해 이어오다가 끊기게 되었는데, 동성이 자사고가 됨으로써 사제 양성의 학교 소임을 회복할 수 있었고, 충실히 그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매년 평균적으로 10명 이상의 학생들을 사제 양성 고등교육기관인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입학시켜 왔습니다.
본교는 자사고 운영에 대한 서울시교육청과 정부의 정책이 바뀌어 자사고 폐지 쪽으로 방향이 바뀐 상황 속에서도 자사고를 시작했던 그 초심을 잃지 않으며 가톨릭 교육철학과 교육이념에 부합하는 좋은 교육을 해 나가고자 최선을 다하였고, 2014년과 2019년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도 당당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자사고로서 성공한 학교가 되고자 학교법인의 적극적인 지원과 동문의 도움을 받으며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그런데 2021년 5월 27일 오늘 동성고등학교는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자사고에서 일반고로의 전환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에서는 자사고로서의 길을 충실히 걸어오고, 두 번에 걸친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모두 통과한 동성고등학교가 왜 일반고로 전환하려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2025년 모든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됩니다. 물론 향후 정치적 구도 변화, 헌법소원 결과 등에 의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여러 가지 상황이 자사고 폐지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입생 선발에서 전기고에서 후기고로의 전환, 교육과정 자율권 회수, 학생생활기록부 블라인드 처리 등 자사고로서 누리던 특수성과 장점이 사라졌고, 고교 무상교육 전면 실시, 2025년 예정된 고교학점제, 학령인구의 지속적인 감소 등 교육 환경이 자사고 유지에 불리한 방향으로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본교는 자사고 운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최근 몇 년에 걸쳐 대규모 신입생 미달 사태를 겪었고, 이러한 상황이 학교의 노력을 통해 현저히 개선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강한 회의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본교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것으로, 가톨릭 교육철학과 교육이념에 근거해 자사고로서 본교가 추구했던 교육과 학부모가 자사고에 대해 기대하는 교육과의 괴리였습니다. 즉, 일반적으로 자사고를 선택하는 학부모는 학교가 엄격한 학업 관리를 통해 대입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을 학교의 최우선적 교육 목표로 삼기를 기대하는데 본교가 추구하는 교육은 그러한 부분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율성을 가지고 가톨릭 교육철학과 교육이념에 근거한 교육을 해 나가고자 자사고의 길을 걸었는데 자사고 체제 안에서 그러한 교육을 해 나가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고, 현시점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사고의 옷을 벗을 때, 보다 자율성을 가지고 동성고다운 교육을 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자사고로서 본교의 정체성 혼란, 2025년 예정된 자사고 폐지, 자사고에 불리한 교육 환경과 교육 당국의 정책, 대규모 신입생 미달 사태 등은 계속해서 본교가 자사고의 길을 가야 하는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고, 학교의 미래와 발전에 대한 학교법인과의 진지한 논의 끝에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자사고에서 일반고로의 전환을 추진하게 된 것입니다.
최우선 배려 대상은 재학생입니다.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할 때 재학생들의 학부모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자사고로서 해 오던 프로그램이 축소되거나 학업과 관련된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현 1학년이 졸업하는 때까지 현재의 교육 프로그램들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고, 교육의 질 유지를 위해서도 교사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아가, 현재보다 나은 교육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고, 학교 운영에 있어서 현 재학생들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하겠습니다.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했던 학교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일반고로 입학하는 신입생이 내는 등록금과 재학생이 내는 비싼 자사고 등록금 사이의 간격이었습니다. 본교는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일반고 전환이 확정될 경우, 무상 교육을 받게 되는 신입생들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내년부터 2, 3학년이 되는 재학생들에게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학교법인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지급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장학금 지급은 현재 1학년 학생들이 졸업하는 2023년까지 자사고로 유지되는 상황 속에서 자사고 학생으로서의 신분을 유지하면서 비싼 등록금을 모두 면제받는 것이기에 학부모들에게 재정적으로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가톨릭 학교다운 학교로 계속해서 발전해 가겠습니다.
자사고로서 동성고등학교는 가톨릭 교육철학과 교육이념에 근거해서 지성과 인성의 통합 교육을 추구하였고, 예비신학생반을 운영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장학금 제도를 통해 소외된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앞으로도 지성과 인성의 통합을 추구하고, 학생 개개인을 존중하며, 미래역량을 키워주는 학교, 따뜻한 공동체적인 교육환경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학생들이 행복한 그런 좋은 학교를 만들고자 힘쓰겠습니다. 물론 대학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학업에 있어서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교과중점학급과 교과특성화학교 운영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사제 성소 지망자들은 ‘인문중점학급’(Humanitas class)을 통해 양성하게 될 것입니다. 자발적인 일반고 전환 자사고를 대상으로, 교과중점학급을 운영할 수 있도록 교육청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는데, 본교는 가톨릭 교육철학과 교육이념에 기반을 둔 ‘인문중점학급’ (Humanitas class)을 운영하면서, 라틴어, 종교학, 철학 등의 교과목을 개설하여 사제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줄 예정입니다. 또한 특색있는 인문학 프로그램들을 도입하여 인문 분야에 특별한 관심이 있거나 재능을 가진 인재도 인문중점학급을 통해 양성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과학, 수학에 특기가 있는 학생들을 위해 ‘과학·수학 특성화학교’를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과 수학의 심화된 교육과정을 새로 개설하면서 현재 운영 중인 지질탐사, 코딩교육, 발명반 활동, 천체관측반, 조간대 탐사 등 학교 특성화 사업을 더욱 발전시켜 진행해 나가겠습니다.
가톨릭 명문사학으로서 자부심을 생각합니다.
재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본교를 졸업한 동문들이 모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가톨릭 명문고로서 계속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가톨릭 교육철학에 충실한 가운데, 변화하는 교육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학생들의 미래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을 해 나가고자 힘쓸 것입니다. ‘학교 내 교육과정의 다양화’라는 교육체제의 변화를 선도하면서, 개별화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설계하고 정진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대비하여 인공지능 및 코딩 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으로 도입할 예정입니다. 학교의 교육 환경도 계속해서 개선해 나갈 것입니다. 올 8월이면 운동장 쪽에 학생들이 다양한 창의적 교육 활동과 쉼을 가질 수 있는 4층 높이의 샛별관이 완공됩니다. 그리고 일반고 전환에 따른 교육청 지원금을 우선적으로 학생들의 교실환경을 개선하는 데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반고 전환으로 학생들이 실망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교육 환경 속에서 더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하여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피겠습니다.
지난 두 달 동안, 학교 공동체 구성원들인 교직원, 학생, 학부모, 동문과 일반고 전환에 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분명하게 반대를 표명하는 분들이 있으셨고, 걱정하는 분들도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누구보다도 동성을 사랑하시는 동문들께서 큰 우려와 함께 반대를 표명하고 계십니다. 그분들을 포함해서 동성고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동성고등학교를 끝까지 자사고로서 지켜나가지 못하게 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 급변하는 학교 교육 환경에 맞추어 발전적인 방향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학교의 결단에 학교 전체 교직원의 약 72%, 전체 학부모의 약 75%가 지지를 표명해 주셨습니다. 학교의 변화 노력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시고 지지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위기는 분명 ‘기회’이기도 합니다. 본교는 새로운 변화 모색을 통해 지금의 큰 위기를 큰 기회로 만들고자 합니다. 학교법인의 적극적인 지원과 동문의 지지와 협력, 교사⦁학생⦁학부모가 함께 노력한다면 본교는 자사고였을 때보다 더욱 좋은 학교, 더욱 좋은 명문고로 발전해 가리라 확신합니다. 가톨릭 교육철학과 교육이념에 부합하는 지성과 인성의 통합 교육, 개별화 교육, 미래역량교육, 공동체 교육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가톨릭 명문 사학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해 가려는 저희 동성고등학교를 앞으로 계속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5월 27일
동 성 고 등 학 교 장 조 영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