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악순환 끊으려면
‘관계 개선’과 ‘인성 함양’ 통한 예방 교육 선행돼야
학교폭력 피해 사실 폭로로 가해자는 ‘사회적 매장’ 당해 /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 되면서 폭력 되풀이 되는 현상 초래
처벌보다 화해·관계회복 급선무 / 교회 가르침 입각한 교계 학교들 ‘관계’ 중심 각종 프로그램 운영
진심어린 관심으로 다가가 함께 소통·동반하는 것이 중요
가톨릭 신문 / 발행일2021-03-07 [제3234호, 11면]
학교폭력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화해와 관계회복에 중점을 둔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 교계 학교들은 이러한 교회 가르침에 따라 관계성에 중점을 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운동선수들과 연예인 등 유명인의 과거 학교폭력이 피해자들로부터 연달아 폭로되면서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피해자들은 오랜 기간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등 학교폭력 폐해가 드러남에 따라 이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교계 학교 관련 전문가들은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학교폭력 예방이 선행돼야 하며, 화해와 관계회복에 중점을 둘 것을 제안한다.
■ 폭력의 악순환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자존감 저하, 우울증 등으로 인해 성인이 된 후에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홍성남 신부는 “외부로부터 부당한 폭력을 당하면 치유되지 않은 상처인 트라우마가 남게 된다”며 “어린 시절일수록 당한 기억이 생생하게 기억나고, 마음 안에서는 공소시효가 없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 가해자가 잘 사는 것을 보게 되면 복수하고 싶은 심리가 생겨나게 된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유명인들의 과거 학교폭력 사실을 폭로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여론의 거센 비난에 스스로 은퇴를 선언하는 등 대중들의 눈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사회적 매장 수순을 밟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돼야 하는 한편 가해자도 처벌보다 선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남승한(라파엘) 변호사는 “학교폭력 폭로가 학생들에게는 어떤 예방교육보다 큰 위하(威嚇)적 효과를 가져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행위 이상의 책임을 물으면서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돼 폭력이 되풀이되는 현상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이서원(프란치스코) 상담가도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 학생들은 최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하지만, 한편으로 이들도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수 있는 폭력성이 내재돼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가정과 학교는 학생들 눈높이에 맞게 동반하고 면밀히 보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0대는 이성적인 사고보다 감정이 앞서는 시기이기 때문에 누구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교육과 예방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학교폭력 예방 위한 교계 학교 노력
교육부는 지난해 발표한 ‘제4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안’을 통해 처벌 중심에서 화해와 관계회복 중심으로 정책환경 변화를 소개했다. 곧, 중대한 학교폭력은 엄정대처하면서 학생 간 관계회복을 위한 학교의 교육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다.
교회도 학생 간의 관계성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그리스도인 교육에 관한 선언」은 학교의 중요성에 대해 “다양한 환경과 자질의 학생들 사이에서 교우 관계를 맺게 하여 상호 이해의 정신을 길러 준다”(5항)고 명시한다.
교계 학교는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관계성에 중점을 두고 학교폭력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논산 대건고등학교는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역할극을 준비하고 있다. 역할극은 서로의 심정을 이해하는 놀이로서 전체가 마음을 모으는 데 유용한 교육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청주 양업고등학교는 학교폭력 사안과 관련해 가장 먼저 학생자치회가 움직이고 있다. 엄중한 사건이 일어나면 교육부 방침에 따라 처벌하지만, 학생자치회 차원에서 소통하고 예방하려는 공동체성을 보이고 있다. 양업고는 전교생의 5분의 1이 학생회로 구성돼 있다. 안성 안법고등학교도 학생회와 연계해 학교폭력 프로그램을 만들고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서울 동성고등학교는 2014년부터 ‘동성학교 평화지킴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지원한 3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학교 평화지킴이 운동이다. 이는 ‘3인의 법칙’을 근간으로 세 사람이 선한 일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동참하는 것에 착안했다. 모든 학급 안에서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다양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성고 종교인성부장 김홍주 신부는 “학교폭력은 결국 피해자, 가해자 모두 불행해지기 때문에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돼서는 안 된다”며 “교계 학교에서 관계성 개선과 인성함양은 가장 중요한 교육 중 하나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함께 송편을 만드는 살레시오회 ‘돈보스코 wee스쿨’ 황현철 신부(위)와 학생들 아침 간식을 직접 만들고 있는 교사들. ‘돈보스코 wee스쿨’은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등 학교 부적응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황현철 신부 제공
■ 변화의 열쇠, 마음의 소통
교계 학교를 비롯한 여러 일반 학교에서도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하지만 예방 프로그램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승한 변호사는 “현재 우리나라 학교폭력 예방법이나 프로그램 자체는 매우 잘 돼 있는 편”이라며 “법이나 프로그램 문제보다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문제가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 같다”고 밝혔다.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등 학교 부적응 학생들과 동반하고 있는 ‘돈보스코 wee스쿨’ 황현철 신부(살레시오회)는 관심과 동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황 신부는 “관심 가져 주고 동반해 주는 시간 안에서 가해자든 피해자든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을 본다”며 “그럴 때 함께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러한 노력 중 하나가 학교에 오는 학생들을 위해 아침밥 개념으로 토스트나 간식을 직접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다. 황 신부는 “아이들이 아침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할 때 이미 서로 간에 신뢰는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교 부적응 학생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돈보스코 미디어스쿨’ 교장 박정우 신부(살레시오회)도 “마음의 소통이 일어나지 않으면 겉도는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든 가해자든 마음으로 다가서야 학생들의 변화와 관계회복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학생들에 대한 직접적인 치유는 프로그램 자체보다 결국 눈높이에 맞게 동반하는 교사와 부모의 진심, 또래 친구와 관계회복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박 신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계속해서 믿음을 심어 주고 지지해 주면, 가해 학생들은 경계했던 표정과 눈빛이 돌아오고 피해 학생들은 마음을 여는 모습들을 발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동반하는 것들은 전혀 특별한 내용이 아니다”며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제로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날 교권은 여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기도 하지만, 학교폭력 역시 정도가 매우 잔혹하고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마음으로 계속해서 다가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